[독자 마당] '꼬뱅이'
“꼬뱅이가 시리다.” 내가 어릴 적 할아버지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말을 입에 달고 겨울을 나셨다. 물론 ‘꼬뱅이’는 사투리다. 표준말로 하면 무릎이라는 걸 내가 알고는 있었지만 ‘무릎이 시린’ 상태를 이해하기엔 예닐곱 살 남자아이의 피는 과분하게 더웠다. 꼬뱅이가 시린 것은 할아버지만의 문제였고 나는 전혀 그런 증세와 무관했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내게도 꼬뱅이가 시린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아파트 안은 춥지도 않고 온도도 쾌적하리 만큼 따뜻함에도, 자는 동안 무릎 위쪽으로 반 뼘 정도 되는 부위가 조금 저릿저릿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 새벽엔 증세가 불편한 정도에 이르러 3시가 좀 넘어 눈을 떴다. 꼬뱅이가 시리다. 할아버지가 겨우내 입에 달고 다니시던 그 말이 반백 년 시간이 지나 내가 할아버지의 나이가 된 지금에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한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런 말을 했다. “나이가 들어가며 지혜가 따라온다, 그러나 때론 나이만 들기도 한다.” 내 나이가 환갑을 넘었다. 백세 인생이라고 해도 이미 꺾어진 인생이다. 지혜는 나이 들었다고 해서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지혜는 사람들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하려는 너그러운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내 꼬뱅이가 시리고 나서야 비로소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나는 그런 면에서 참 아둔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인터넷으로 무릎 시린 증상을 검색해 보았다. 아침저녁으로 족욕을 하면 증세가 호전된다고 한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따뜻한 물로 족욕을 할 것이다. 족욕을 하면서 육체의 꼬뱅이 시림 뿐 아니라 마음의 꼬뱅이 시림을 하소연하는 사람들의 말을 어떻게 하면 잘 들어주고 이해할까를 고민할 것이다. 비록 꼬뱅이가 시리긴 해도 지혜롭게 늙어가고 싶은 까닭이다. 김학선·자유기고가독자 마당 동안 무릎 오스카 와일드 오늘 새벽